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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plug/Art

힐마 아프 클린트와 힙노시스 그리고 미래시

by 우타미 2026.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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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 현대 미술관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

 
작년 가을 비가 날리던 저녁이었다. 개발자 친구랑의 저녁 약속 시간까지 붕뜬 시간을 채우려 우연히 발걸음한 힐마 아프 클린트 전시는 뜻밖의 압도적인 경험이었다. 평일 마감 직전의 전시장에는 오직 나뿐이었고 정적 속에서 작가의 생애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초기의 정교한 인체 삽화와 식물 세밀화를 지나 교령회 이후 변화된 기하학적 나선과 도형의 세계를 마주했다. 특히 내 키의 두 배를 정도되는 <인생의 4단계> 시리즈 앞에 섰을 때의 전율은 잊을 수 없다.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일렬로 늘어선 거대한 캔버스들 사이에서 강렬한 오렌지빛의 청년기를 지나 분홍빛 성년기로 넘어가는 지점을 마주했을 때 묘한 싱숭생숭함이 밀려왔다.
 

 
  스물여덟 스스로의 취향이 확립되고 ‘어른은 아니지만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한 시기였기에 그 색채의 변화가 더욱 형용할 수 없는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번 뉴콘텐츠 아카데미  과제로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그날 느꼈던 막연한 감정의 실체를 작가의 철학과 연결해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해군 장교 집안에서 1862년에 태어나 수학과 천문학 등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스톡홀름에 있는 왕실 미술 아카데미 출신이라 그곳에서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을 익힐 수 있었다. 교령회 활동을 하면서 영적 존재와의 소통을 시도하며 자신을 매개체로 영적인 존재와 세상을 연결하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남성 중심 미술계의 배제와 영적인 존재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그림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힐마 본인마저 지금의 세상은 날 이해하지 못하니 20년 뒤에나 내 그림을 전시해라 라는 유언을 남긴 것을 보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던 사람같다.
 

2. 다큐 -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

출처 : https://www.imdb.com/title/tt9760516/?ref_=nv_sr_srsg_0_tt_5_nm_3_in_0_q_hilma%2520af%2520

 
  1년에 111작품을 만든 힐마 아프 클린트는 단순히 영감을 기다린 사람이 아니라 수행에 가까운 작업량을 보여줬다. 어느 분야든 정점에 이른 사람은 매일 도를 닦는 수행자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거의 3일에 한 작품씩 만드는데 있어서 그녀의 작품과정을 들여다보면 생각을 바로 흘려보내듯 템페라 채색을 한다. 유화와는 다르게 계란을 이용해 채색을 한 힐마는 기다림 없이 바로 건조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한눈에 다 담기 어려운 큰 작품을 템페라 특유의 무광질감을 통해 반사광없이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도 전체적인 작품을 관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우주의 흐름을 한눈에 그리고 밀도있게 바라 볼 수 있도록 이끈다.
 
  힐마 아프 클린트전을 관람하면서 느꼈던 점은 런던의 앨범 커버제작사 힙노시스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힐마 아프 클린트와 힙노시스의 가장 결정적인 공통점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재현을 거부한다는 철학적 태도에 있다. 힐마는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는 것이 세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믿었기에 구상 화법을 버리고 추상의 길을 택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태도는 훗날 힙노시스의 디자인 철학에서도 변주된다. 힙노시스는 앨범의 주인공인 밴드 멤버들의 얼굴을 커버에 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피사체인 인물 대신 음악이 가진 근원적인 철학과 정서를 시각화하는 데 집중했다. 힐마가'자연을 지우고 그 자리에 영혼의 지도를 그렸듯 힙노시스는 스타의 얼굴을 지우고 그 자리에 음악적 본질을 새겨 넣은 것이다. 이들에게 예술이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본질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치열한 시각적 번역의 과정이었다.
 
 

3. 힐마 아프 클린트와 힙노시스의 미학적 도원결의

  대표적으로 내가 오 힙노시스! 라고 느꼈던 작품들을 나열해 보았다. 프리즘을 통해 빛의 스펙트럼을 분해한 힙노시스의 추상은 힐마가 <제단화>에서 보여준 우주의 질서와 영적 에너지가 발산되는 도식과 궤를 같이한다. 두 번째로 힙노시스는 어안렌즈를 이용해 다리를 왜곡하고 상하대칭의 구조는 힐마가 나선으로 시각화 했던 <들숨과 날숨>의 순환적 에너지를 현대적 건축물로 재현한 것 같다. 핑크플로이드의 초기 사이키델릭 공연의 조명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앨범커버는 마치 힐마의 후기 수채화 연작 <On the Viewing of Flowers and Trees> 물감 번짐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것에대한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조화 할 것이가에대해 두 창작자는 마치 시대를 초월해 미학적 도원결의한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나의 작업은 '재현'에 가까웠다.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결국 어떻게 스크린에 보여질 것인지를 글로 설계하는 일이었고, 나는 본질보다는 가시적인 보여짐에 더 중점을 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들을 마주하며 깨달은 것은 동시대의 표면을 재현하는 일은 그 시대 안에서의 일시적인 유대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점이다. 반면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시각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감각을 건드리는 시대를 초월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는 내가 향후 뉴콘텐츠아카데미에서, 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추구하고 싶은 아니 반드시 훔쳐오고 싶은 거장의 시야이기도 하다. 재현의 도구를 넘어 본질을 시뮬레이션하는 창작자로 나아가는것 그것이 100년 전 힐마가 남긴 캔버스들이 2026년의 나에게 던진 가장 뜨거운 직구다.
 

4. 사담

PD님이랑 힙노시스 전시 보러갔다가 느꼈던 감정들을 그보다 100년전 힐마 아프 클린트 그림보고 또 느낄 수 있어서 좋았네 뭐랄까 게임으로 치면 미래시 가지고 게임하는 느낌 <우마무스메>게임에서 키타산 블랙이라는 카드 나올때까지 재화 모아둬라는 글로벌 서버 사람들의 조언이 마치 한국서버에서의 예언 처럼 느껴졌음
우주 서버의 미래시를 지구서버에서 들려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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